<여행을 떠나요>
성 스테파노스 그레고리안 아르메니아 교회
2026.09.26 18:32
이란 서부의 유서 깊은 고대 도시 하마단(همدان)은 메디아(메데) 왕국의 수도였던 엑바타나, 즉 오늘날의 헤그마타네 언덕(تپه هگمتانه)으로 유명합니다.
이 유서 깊은 유적지의 동쪽 끝자락, 오랜 아르메니아인 거주 구역에 들어서면 이슬람 문화권의 심장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소박하고 경건한 기독교 유적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바로 1676년 사파비 왕조의 샤 슐레이만 1세(شاه سلیمان یکم) 통치 시기에 처음 세워진 성 스테파노스 그레고리안 아르메니아 교회(کلیسای گریگوری استپان)입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과거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의 격돌 속에서 이란 땅으로 이주하여 이스파한의 뉴 줄파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곳 하마단의 아르메니아인들 역시 비단 무역과 수공예의 중심 역할을 하며 삶의 터전을 닦고,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데반(성 스테파노스)를 기리는 교회를 지어 자신들의 신앙과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처음 세워진 예배당은 혹독한 지진과 자연재해 속에서도 225년이 넘는 긴 세월을 꿋꿋하게 버텨냈으나, 세월의 풍파로 큰 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 이사회와 이스파한 아르메니아 대주교청, 그리고 독실한 교인들의 헌신적인 기금 모금을 통해 재건을 시작하여 마침내 1936년 지금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벽돌조 예배당으로 완공되었습니다.

이정표에는 페르시아어로 ‘کلیسای گریگوری استپانوس(켈리사에 그레고리 에스테파누스)’라는 글과, 영문으로 ‘gregorian church pct’라는 안내가 선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황무지와 고대 성벽 터를 걷다가 마주친 이 이정표는, 전혀 다른 문명과 신앙의 세계로 들어서는 비밀스러운 입구처럼 보입니다.
황토색 외벽과 단단한 석조 기단 너머로 교회의 두 첨탑과 부속 건물들이 시원스레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 뒤편으로는 본당 지붕 위로 솟은 아담한 원형 종탑의 은빛 원뿔형 지붕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본당 정면 파사드의 팔각 종탑이 솟아 있습니다.
맑고 청명한 코발트빛 하늘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 뭉게구름과 햇살이 황토벽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고 호젓한 정취를 자아냅니다.
교회의 역사적 연원과 건축 내력을 페르시아어와 영어로 상세히 기록해 둔 공식 안내판입니다.
건립 당시의 이야기와 출입문 머릿돌에 기록된 완공의 이야기가 페르시아어와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영문 본문은 사파비 제국의 샤 슐레이만 시대인 1676년에 지어졌다는 사실과 함께, 225년간의 풍파를 겪은 뒤 더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으로 재건되어 1936년에 완공되었다는 과정을 명확히 전해줍니다.
교회의 외경입니다.
전형적인 아르메니아 교회의 정체성을 담은 팔각 종루가 본당 정면에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경사진 금속 박공지붕과 규칙적으로 늘어선 아치형 창문들이 단정한 조화를 이룹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따스한 붉은 벽돌이 빚어내는 온화한 색채의 대비는, 중동의 거친 사막 기후 속에서도 푸른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깊은 평안을 선사합니다.

1층 입구는 우아한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둥근 아치형 포치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양옆 벽면에는 끝이 살짝 뾰족한 이슬람식 오지 아치(Ogee Arch) 창문이 조화롭게 자리합니다.
그 위로 2층의 팔각형 벽돌 종탑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으며, 꼭대기의 작은 십자가가 맑고 깊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교회 내부의 중앙 통로와 제단이 보입니다.
화려한 장식 대신 순백의 회벽으로 마감된 아치형 천장은 높고 시원하게 뻗어 있으며, 천장 중앙에는 우아한 촛대형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바닥에는 오랜 세월 신자들의 기도가 켜켜이 묻어난 짙은 갈색의 목재 장의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습니다.
현지인들과 방문객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 속에서, 이슬람 사회 속에서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아르메니아 신앙 공동체의 특별한 분위기가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성당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반원형 앱스(Apse) 안에 꾸며진 아름다운 제단의 모습니다.
제단 상단에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가 목조 프레임 안에 있고, 성화 꼭대기에는 검은 십자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놓여 있으며, 제단 우측에는 붉은 벨벳 커튼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습니다.
제단 바닥 전체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의 전통 페르시아 카펫이 융단처럼 깔려 있어, 기독교의 예전과 이란 현지의 탁월한 직조 예술이 절묘하게 하나로 녹아든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제단에서 성당의 정문 출입구와 회중석을 바라봅니다.
천장에는 금빛과 크리스털로 장식된 클래식한 샹들리에가 은은한 불빛을 밝히고 있으며, 양쪽 벽면의 뾰족 아치 창문으로는 자연의 따스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옵니다.
출입문 상단의 아치형 벽면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화와 함께, 주변 벽면을 따라 여러 성인들의 작은 초상화들이 소박하게 걸려 있습니다.
성당 벽면에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곁을 지키는 사도 요한의 모습이 그려진 성화가 걸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고난과 방랑을 겪으면서도 십자가를 붙들고 신앙을 지켜온 아르메니아인들의 삶과 기도가 바로 이 성화 속 요한의 간절한 포옹과 닮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성당 본당 가장자리 복도의 붉은 벽돌 바닥에는 나란히 매설된 직사각형의 대리석 묘비들이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전통에 따라 교회 바닥에 안장된 성직자와 유력 평신도들의 묘비 표면에는, 독특하고 각진 고유의 아르메니아 문자(հայերեն) 비문들이 촘촘하게 음각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묘비는 오랜 세월 신자들의 발길과 지진의 충격을 겪은 듯 대각선으로 깊은 균열이 가 있어 짙은 역사의 풍상을 실감하게 합니다.
다른 두 개의 대리석 기념 묘비석입니다.
오른쪽 묘비석에는 아르메니아 고유 문자로 고인의 이름과 출생, 그리고 '1898', '1868', '1918'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구체적인 서기 연도 숫자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왼쪽 묘비 상단에는 생명과 영생을 상징하는 삼각형이 새겨져 있으며, 세월에 마모된 부드러운 글자체들이 은은한 질감을 드러냅니다.
타향의 거친 고원 도시 하마단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언어와 믿음을 비석에 새겨 남긴 아르메니아인들의 신앙이 마음을 뭉클하게 적십니다.
유적지 아래쪽 광장에서 교회의 웅장한 자연석 축대와 본당 건물을 올려다 봅니니다.
손으로 다듬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층층이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석축 벽 위로 흰색 철제 난간이 길게 이어지고, 넓은 벽돌 계단이 위쪽 테라스를 향해 시원스레 뻗어 있습니다.
계단 위로는 전통적인 목조 발코니를 얹은 2층 부속 건물과 함께, 그 너머로 은빛 원뿔형 지붕을 얹은 원형 종탑이 파란 가을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습니다.
고대 메디아 왕국의 심장이자 거친 고원의 역사를 품은 하마단 헤그마타네 언덕에서 마주한 성 스테파노스 그레고리안 교회는, 이란이라는 거대한 문명 속에서 만난 깊고 경이로운 반전(反轉)의 공간입니다.
사파비 왕조 시기부터 20세기 초의 모진 격변기까지, 고향을 떠나온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 비단과 무역을 일구면서도 결코 자신들의 신앙과 고유 문자를 잊지 않았습니다.
성당 바닥 깊숙이 새겨진 낡은 묘비석들과 제단 바닥에 펼쳐진 화려한 페르시아 카펫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방랑의 아픔과 현지 문화와의 지혜로운 공존을 동시에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공화국의 한복판에서 푸른 하늘을 향해 당당히 십자가를 들어 올린 붉은 벽돌의 종탑을 바라보며, 문명과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의 존엄과 믿음을 지켜낸 이들의 뜨거운 숨결을 온몸으로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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