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2026.09.13 10:20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창세기 21:14~16)
오늘의 본문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먹먹하게 만드는 깊은 아픔과 애절한 탄식이 배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에게 건네며 떠나보냈습니다.
얼핏 보면 매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이른 아침의 출발 속에는, 실상 그 시대 사람들의 고된 삶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경의 무대가 되는 팔레스타인과 광야 지역은 한낮이 되면 내리쬐는 태양이 살을 태울 듯이 뜨겁기 때문에 도저히 먼 길을 걷거나 힘든 노동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루 중 가장 서늘하고 활동하기 좋은 새벽녘, 해가 지평선 위로 높이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일어나 길을 떠나야만 광야의 살인적인 열기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후적 환경은 그 땅의 사람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고도 필수적인 삶의 관습으로 정착시켰습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말이나 영어에서는 '일찍 일어나다(rise early)'라고 두 마디로 표현하지만, 히브리어에서는 오직 한 단어인 '샤캄(ם, šāḵam)'이라는 동사 하나로 표현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무려 예순여섯 번이나 등장하는 이 단어는, 야곱과 모세, 여호수아와 다윗, 그리고 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 앞에서 매일의 호흡을 시작하던 거룩한 습관이기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던 날 아침에도, 훗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모리아 산으로 향하던 비장한 날 아침에도 아브라함은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하갈과 아들인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광야로 내보내는 이 가슴 찢어지는 아침에도, 아브라함은 하갈과 자식이 낮의 뜨거운 뙤약볕을 조금이라도 덜 맞고 그늘과 오아시스를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지막 배려로 이른 새벽부터 길을 채비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떡과 함께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정성껏 메워 주었습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역과 이집트의 풍습을 살펴보면 여인들은 흔히 물 항아리나 무거운 자루를 어깨에 얹어 메고 다니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가 우물가에서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왔던 장면처럼, 아브라함이 하갈의 어깨에 가죽부대를 얹어 준 행동은 당시 문화권에서 여성을 향한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온당한 방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서아시아와 이집트의 여인으로서 하갈은 익숙한 방식으로 어깨에 무거운 물가죽을 짊어지고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장막을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의 관대하고 넉넉한 성품, 그리고 그의 핏줄인 이스마엘을 향한 애정을 떠올려 볼 때, 그는 결코 그들에게 한 모금의 물과 약간의 빵만을 인색하게 쥐여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까운 인가나 다음 정착지까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양의 양식과 물을 가죽부대에 가득 채워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극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그들이 방향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갈이 광야에서 '방황하더니'라고 기록할 때 쓰인 히브리어 표현에는 '실수하다', '헤매다', '길을 잃다'라는 뜻이 깊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지표가 되는 길도 표지판도 없는 거친 브엘세바의 광야 한복판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그만 길을 잃고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맴돌았던 것입니다.
그토록 넉넉하게 준비했던 물가죽의 물도, 광야의 타는 듯한 갈증과 끝없이 헤매는 시간 속에서 결국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 참담한 비극의 순간을 묵상할 때, 우리는 이 비극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엄숙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광야로 내쫓긴 하갈과 이스마엘의 처지가 한없이 가혹하고 안타깝게만 보이지만, 이는 언약의 자손인 이삭을 조롱하고 멸시했던 그들의 그릇된 태도로부터 말미암은 결과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겸손히 그들의 상황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화목을 지켰다면, 이스마엘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부유하고 안전한 아브라함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축복과 넉넉한 분깃을 물려받아 존귀하게 분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스스로의 분수를 넘어서는 교만과 지혜롭지 못한 한순간의 행동으로 인해, 마땅히 누릴 수 있었던 하늘의 은혜와 축복을 잃어버리고 불필요한 광야의 고통을 자초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죽부대의 물이 완전히 바닥나자, 기진맥진하여 탈수로 쓰러져 가는 어린 자식을 더 이상 업고 갈 힘조차 없던 하갈은 마침내 그 아이를 바싹 마른 관목덤불 그늘 아래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절규하며, 아이로부터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진 곳으로 물러나 마주 앉았습니다.
'살 한바탕'이란 활을 쏘았을 때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 즉 약 100미터에서 150미터 남짓 되는 거리입니다.
자식의 마지막 숨소리를 차마 눈앞에서 지켜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홀로 두고 멀리 떠나갈 수도 없었던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이 바로 그 '화살 한바탕 거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며 목놓아 우는 하갈의 통곡 소리는 적막한 광야의 허공을 가르며 메아리쳤습니다.
인간의 모든 지혜와 수단이 완전히 바닥나고, 마실 물 한 모금조차 남지 않은 그 절대적인 절망의 자리에서 비로소 인간의 이야기는 멈추어 섭니다.
그러나 그 화살 한바탕 거리 너머에서 들려오던 여인의 눈물과 아이의 가쁜 숨소리는, 결코 헛되이 광야의 모래 속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아무런 소망 없이 주저앉아 통곡할 때, 인간의 한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관목덤불 아래에서 마침내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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