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2026.09.04 22:07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1:9-13)
하나님의 기적 같은 언약 안에서 젖을 떼고 기쁨으로 자라가는 어린 이삭의 곁에, 어두운 갈등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사라의 눈에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놀림)'하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성경 원문에서 이 '희롱'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아이들의 장난을 넘어, 조롱과 멸시, 그리고 핍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과 조급한 방법으로 낳았던 이스마엘이, 마침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태어난 약속의 후사를 핍박하는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서 이 사건을 영적으로 조명하며,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어린 이삭을 향한 조롱을 목격한 사라는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단호하게 요구합니다.
과거 하나님의 언약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을 때,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품에 밀어 넣으며 인위적인 후사를 만들려 했던 장본인 역시 바로 사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어 자신의 친아들 이삭이 태어나자,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를 차갑게 외면하며 그 모자를 광야로 내몰 것을 강력하게 종용합니다.
더욱이 성경 본문 9절에서는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객관적 위치로 기록하고 있지만, 사라는 그를 결코 아들이라 부르지 않고 오직 '이 종의 아들'이라 낮추어 부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며,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말을 바꾸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라가 그 모자를 쫓아내고자 했던 결정적인 명분은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는 유산과 재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 주장이었습니다.
자신의 핏줄이자 십수 년 동안 애정을 쏟아 키워온 맏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사라의 요구 앞에, 아브라함은 밤을 지새우며 마음의 근심에 휩싸입니다.
육신의 정을 지닌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자식을 광야로 내보내야 한다는 가혹한 현실은 아브라함의 영혼을 짓누르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인간의 시야와 부족한 지혜로는 풀 수 없는 얽히고설킨 딜레마 속에서 방황할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깊은 침묵과 번민을 깨뜨리시며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라의 이기적인 감정에 손을 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인간의 수단이 아닌 오직 은혜의 언약인 '이삭'을 통해서만 흘러가야 함을 확증하신 선포였습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은 인간의 혈통과 혈기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약속을 통해 다시 태어난 영적 후손들뿐임을 밝히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언약은 결코 약자나 소외된 자를 무자비하게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찢어지는 가슴으로 고통받는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며,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따뜻한 자비의 약속을 덧붙여 주십니다.
비록 이스마엘이 구속사의 메시아 계보를 잇는 영적 언약의 후사는 아닐지라도, 아브라함의 씨앗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과 미래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실수로 인해 태어난 생명조차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의 장막 아래 있으며, 광야로 쫓겨나는 연약한 하갈과 이스마엘의 눈물을 주님께서 친히 닦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불신앙과 조급함이 빚어낸 쓰라린 비극마저도 선으로 바꾸사, 한 민족을 일으키시는 크고 놀라운 섭리의 역사로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가 삶의 척박한 광야로 내몰리고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는 듯한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의 자비로운 눈동자는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며 은혜를 베푸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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